술이나
알콜이
들어있는
음료수를
마시는
것은
죄가
아니다.
그것이
죄가
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우리가
마시는
것을
보고
그래도
괜찮은
것이구나하고
생각하게
만들
때
죄가
된다.
그리되면
그들은
자신이
통제할
수
없으면서도
마시게
된다.
만일
우리가
술을
마신다면
우리는
얼마나
마실
것인지를
통제하는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
소량의
포도주는
위를
위하며
육신의
건강에
좋을
수
있다.
독주는
말
그대로
독이다.
그
속에
아세트알데히드(acetaldehyde),
황산으로
더
잘
알려진
malondialdehyde acetate등이
들어있다.
그것은
산과
알콜이
화학작용을
일으킬
때
물이
없어지면서
생기는
유도물이다.
그것은
사진
필름을
만들거나
플라스틱,
섬유,
또는
니스를
만들
때에도
사용된다.
성령께서
내주하시면서
올려다
볼
때
이러한
여러가지
독성물질이
내려오는
것을
보고
계시는
그림을
한
번
생각해보라.
하나님의
성령
위에
갑자기
산(酸)이
쏟아져
내리면,
우리가
하늘에서
그
분을
만나게
될
때
그
분께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성령께서
우리에게
값없이
주신
자제력은
어떤
죄도
극복할
수
있다.
우리는
아버지의
형상으로
만들어졌으며
그는
실수하지
않으시는
분이다.
우리는
아담이
타락한
결과로
죄가운데
태어난다.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께로
오면
그는
우리에게서
모든
악을
제거해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더
이상
죄에게
종노릇할
필요가
없다.
우리가
포도나무에
접붙인
바
되었기
때문에
이제
우리는
의와
진정한
거룩함으로
다시
태어났다.
예수님께서
자기의
생명으로
우리의
몸값을
지불하셨으므로
우리는
이제
예수님의
것이다.
취하고
싶거나
딱
한
잔만
더라는
유혹이
일때에
하나님은
신실하셔서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유혹을
허락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기억하라(고전10:13).
어떤
유혹이
닥쳐도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악한
자가
내
앞에
놓아
둔
유혹을
물리칠
수
있는
힘을
하나님께서
주실
것이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라.
하나님은
신실하셔서
어려운
상황을
헤쳐나갈
수
있도록
도우실
것이다.
하나님은
항상
가까이
계신다.
내가
하나님을
보지
못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나를
떠나셨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으로
부터
멀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주님과
같이
모래사장을
걷는다는
어떤
사람의
꿈을
묘사한
포스터나
벽걸이를
본
적이
있는가?
그가
걸으면서
자기가
걸어
온
발자취를
보게
되었다.
좋은
시절과
힘든
시절을
지나
온
것이
두
쌍의
발자국으로
볼
수
있었는데
힘든
시절에는
한
쌍의
발자국만
볼
수
있었다.
그는
주님께
항상
함께
있겠다고
말씀하지
않으셨는가고
물었다.
주님은
한
쌍의
발자국만
보이는
시기는
바로
내가
너를
안고
걸었던
때이므로
네가
보는
한
쌍의
발자국은
바로
내
것이란다라고
대답하셨다.
나는
너를
사랑하므로
결코
너를
버리지
않는다.
사도바울은
디모데전서
5:23에서
소량의
포도주는
건강에
좋다고
하셨다.
그
당시에는
정화시설이
지금같이
발달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므로
바울사도는
알콜이
살균작용을
하는
유익함이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술
자체는
해롭지
않지만
너무
많이
마시면
매우
해롭다.
건강을
해칠
뿐
아니라
내가
술
마시는
것을
보고
자제력이
없는
사람들이
괜찮다고
생각하게
이끄는
결과를
가져오므로
내
모범을
보고
형제가
죄를
범하도록
하는
죄를
나도
범하게
되는
것이다.
또
취하게
되면
우리의
사고능력이
흐려지므로
죄를
더
쉽게
범할
수
있다.
디모데전서
5:23은
음식이나
술을
맘대로
마셔도
된다고
허락하는
구절이
아니다.
우리
형제들이
유혹에
넘어가도록
허락하는
것도
아니다.
로마서
14:20-22은
고기를
먹지
않고,
술도
마시지
않고
무엇이든지
형제로
하여금
실족하지
않게
하는
것이
좋다고
말하고
있다.
고기나
술이나
그
자체는
다
깨끗한
것이지만
말이다.
로마서
14:2은
믿음이
있어서
모든
것을
다
먹는
사람과
믿음이
연약해서
채소만
먹는
사람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우리의
행위로
다른
이가
실족하여
죄짓고
부정하게
되는
일을
해야하겠는가?
물론
믿는
자는
고기를
먹을
자유도
있고
안
먹을
자유도
있다.
우리는
내
자신을
만족시키기
위해
다른
신자의
삶속에
이루어지고
있는
하나님의
일을
망쳐서는
안된다.
우리의
영혼을
만족시키지
못하고
단순히
식욕만
만족시키는
음식때문에
천국의
자리를
포기해야
하겠는가?
우리가
하나님께
속해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하나님의
성전이다.
요한복음
14:23에서
예수님은
질문한
자에게
“만일
네가
나를
사랑한다면
나의
계명을
지킬
것이고
내
아버지도
너를
사랑하실
것이다.
우리는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함께
거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술은
마시는
자
뿐만
아니라
술을
잘
못
마시는
사람에게도
실족케하는
것이
될
수
있다.
우리가
마시는
것을
보고
괜찮다고
생각해서
같이
마시게
되는
경우이다.
만일
그대가
존경받는
위치에
있다면
더욱
그렇다.
다른
사람에게
끼칠
해를
생각할
때
가장
좋은
것은
다른
사람들이
실족치
않도록
아예
술을
입에
대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술을
마셔야
할
필요를
느낀다면
아주
조심스럽게
마셔야
한다.
그래서
우리
때문에
다른
사람이
실족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잠언 20장
첫절에서
포도주는
우리로
교만하게
말하게
하고
독주는
싸우게
만들기
때문에
이것들에
빠진
자는
지혜가
없는
자라고
말하고
있다.
자주
싸우면서도
왜
자기가
그렇게
자꾸
문제를
일으키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젊은이들과
얘기해보면
결국
그가
싸워서
얻어
맞고
다치는
원인은
항상
그가
술집에
있었던지
술을
마시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
외에는
남자답다는
것을
남들에게
증명해
보이기
위함이다.
지금
이
자리에서,
남자답다는
것은
싸움과
우쭐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이해해야만
한다.
유일하게
증명이
되어지는
것은
어리석고
무지하다는
것
뿐이다.
술을
마심으로
증명할
수
있는
것은
내가
뇌가
안좋다는
사실
뿐이다.
마시면
마실수록
뇌세포는
점점
줄어든다.
마리화나가
뇌세포를
죽이는
것처럼
술도
뇌세포를
죽인다.
뇌도
술의
파괴력을
막을
수
없고
간도
술을
당해내지
못한다.
유해물질을
남용함으로써
몸은
쉽게
독에
노출된다.
어떤
의사는
적당히라는
것이
얼만큼인지를
말할
수
없다고
했다.
어떤
사람에게는
한
모금이
될
수도
있고
다른
이에게는
한
잔이
될
수도
있다.
우리가
소량을
마시면
아마도
괜찮을
것이다.
큰
죄는
술을
잘
못
마시는
사람을
마시게
해서
그가
어떤
잘못을
저지르게
되는
것인데
그러면
우리도
그와
마찬가지로
죄를
진
것이다.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것
같고,
또는
안정이
되는
것
같고,
또는
만취한
느낌과
같은,
술을
마셔서
얻게
되는
그런
것들이
필요치
않았다면
얼마든지
이런
죄를
저지르는
것은
피할
수
있는
것이다.
취했다는
것은
사실
상
독에
당했다는
것이다.
잠언
28:13-14에서
죄를
숨기면
형통치
못하지만
죄를
자백하고
버리면
불쌍히
여김을
받을
것이라고
했고,
자기
자신의
쾌락을
고집스럽게
추구하는
자는
가난하게
된다고
했다.
에베소서
5:17-18은
어리석은
자가
되지말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라고
말하면서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라고
우리에게
가르친다.
데살로니가전서
5:8-10 “그러나
우리는
낮에
속한
사람들이니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믿음과
사랑의
갑옷을
입고,
구원에
대한
소망의
투구를
씁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벌하기
위해
택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을
얻도록
하기
위해
부르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
죽으셔서,
우리가
살든지
죽든지
상관없이
그분과
함께
살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운명을
정하시는
분임을
확실히
알고
죄인임을
인정하여
그분을
영접하라.
당신이
하나님께
속하고
하나님의
길을
따르면
하나님은
당신의
기도를
들어
응답하실
것이다.
야고보서
4:3을
공부해보라.
“그리고
구해도
받지
못하는
것은
구하는
동기가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오직
자신의
유익만을
위하여
쓰려고
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것이
우리의
마음
속에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고
우리
자신의
욕구만
자리하고
있다면
그것은
지극히
이기적인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주신다는
것은
사실이다.
우리가
그를
영접하고
그에게
순종한다면
말이다.
그리이스
신화에서
박커스(Bacchus)라고도
하는
디오나이서스(Dionysus)가
포도주의
신이고
로마
신화에서는 Liber라고
불리운다.
이
상상
속의
신들
중
어떤
신을
위해
지옥으로
가려는가?
아니면
하나님께서
그대의
삶속에
들어
오셔서
삶의
주인이
되어달라고
기도했는가?
예수님이
누구인지
알지못하는
많은
사람들의
운명을
그냥
받아드리지
말라.
예수님은
사랑이시고
그대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
상관치
않으신다.
그가
당신을
창조했는데
그
어느
창조주가
자기가
만든
것을
사랑하지
않겠는가?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사랑하셔서
아무도
멸망에
이르지
않기를
바라신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께로
돌아서서
그를
통해
영생을
얻으라고
예수님이
나무에
달려
돌아가셨다.
그러므로
오늘
이런
저런
것들을
고쳐보려고
더
이상
지체하지
말라.
인간의
노력은
다
허사요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만
구원받을
수
있다.
지금
그에게
와서
죄인임을
고백하고
예수님이
그대의
주되심을
인정함으로
나와
함께
천국에서
하나님과
영원을
지내면서
고통과
고난이
전혀
없는
영원한
평화를
누리자.
우리는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형제된
인류를
돕는
것이
우리의
임무이다.
하나님의
진리를
가르침으로서
우리는
우리
주위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당하는
많은
고통을
방지할
수
있다.
문제가
무엇이든지,
죄가
얼마나
악하든지,
그
죄가
얼마나
오래
지속되었든지
우리는
하나님의
진리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
Jim Br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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